철도/고속철도

경부고속철도 침목균열

안마리노 2009. 2. 16. 08:37

KTX 시속 300㎞ 주행 때 레일 휘어져 대형 참사 우려
● 경부고속철 2단계 '대구~부산 구간' 침목 균열 확인
공사비 50% 더 드는 콘크리트 공법 첫 시공
설계도와 달리 방수材 대신 흡수材 쓴 때문
철도시설공단 긴급 조사… 15만개 전량 보강
대구=박원수 기자 wspark@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영천=최수호 기자 suho@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지난 12일 오전 경북 영천시 대창면 신광리~북안면 당리 5580m 구간의 경부고속철도 공사현장. 레일 설치를 기준으로 크게 대구~울산(4공구)·울산~부산(5공구), 2개 공구로 나뉜 2단계 사업구간 중 한 곳(4공구)이다. 이곳은 2007년 10월 상·하행선 레일공사를 모두 마쳤다. 하지만 현장공사 구간 중 300여m를 둘러본 결과 설치된 콘크리트 침목(가로 250.9㎝×세로 28.1㎝×높이 18.5㎝) 중 10여군데서 길이 20~30㎝가량의 균열이 띠 모양으로 나 있는 것이 육안으로 선명히 구분됐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4일까지, 사업이 진행된 전 구간에 걸쳐 해당 품목에 대한 전수(全數)조사를 벌이고 보강방안을 마련하는 등의 수습에 나섰다. 공단에 따르면 현재 96.9㎞에 걸쳐 레일이 깔렸으며 설치된 15만5000개의 침목 중 이 같은 현상을 보이는 곳은 모두 222곳(약 0.15%)이다.

고속철 안전운행 가르는 핵심부품

레일설치 작업엔 고속열차 바퀴와 직접 맞닿는 철근 레일, 그 밑에 깔리는 콘크리트 침목, 레일과 침목을 연결해 주는 체결장치 등 크게 3가지 부품이 사용된다.
이 중 레일 밑으로 65㎝ 간격으로 일정하게 깔리는 침목은 고속열차 주행 시 레일이 일정간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레일에 가해지는 힘을 분산해 휘는 현상을 방지한다. 고속철 안전운행 여부를 가름하는 핵심부품인 것이다. 총 길이 124.2㎞, 레일연장(상·하행선 포함) 254.2㎞에 달하는 대구~부산 고속철도 구간엔 모두 35만8000여개의 침목이 사용될 예정이다.

레일과 침목을 포함한 '궤도' 종류는 두 가지로, 자갈로 채우는 '자갈 궤도'와 콘크리트로 채우는 '콘크리트 궤도'로 나뉜다. 자갈 궤도는 상대적으로 공사비가 낮고 공사기간이 짧으며 균열 등 침목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유지·보수가 쉽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침목 하단과 자갈이 붙어 있지 않아 열차 운행이 반복되면 하중의 영향으로 침목이 상하·좌우로 틀어져 레일이 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현재 전국 대부분의 철도, 서울~대구 간 고속철도 중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모두 자갈 궤도가 깔렸다.

콘크리트 궤도는 침목이 바로 밑부분의 콘크리트로 단단히 고정되므로 열차 주행 시 레일이 틀어지는 경우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고속철도가 발달한 독일을 비롯해 고속열차 도입을 추진 중인 대부분 국가가 이 방식을 선호한다. 국내에서 콘크리트 궤도 공법으로 궤도 전체를 만드는 것은 이번 대구~부산 간 고속철도가 처음이다. 이 방식은 자갈 궤도에 비해 50%가량 공사비가 더 들고 공사기간이 길며 침목에 문제가 발생하면 유지·보수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철도분야 관계자는 "콘크리트 궤도는 침목에 균열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주변부를 뜯어내 보수해야 하기 때문에 설치단계에서부터 제대로 된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 지난 12일 경부고속철도 2단계 사업구간인 경북 경주시 화실터널 인근 공사현장에서 관계자들이 궤도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이재우 기자 jw-lee@chosun.com
침목 15만여개 전량 보강작업

침목 설계는 독일 업체 레일원(RAIL.ONE)사(社)가 했고, 침목의 생산·공급은 레일원사의 한국 합작사 천원레일원, 체결장치는 팬드롤(PANDROL UK·영국)의 한국현지법인 팬드롤코리아, 시공은 삼표 E&C, 현장 감리는 ㈜한국철도기술공사가 각각 맡고 있다.

공단은 전수조사 시작 직후인 지난달 29일 고속철도기술처 및 품질환경처 관계자, 천원레일원, 삼표 E&C, 한국철도기술공사와 함께 대책회의를 가졌다. 회의 결과, 균열 발생은 콘크리트 침목 내부에 설치된 '침목과 체결장치를 연결하는 부품'인 매입전에서 비롯된 것으로 잠정 추정됐다. 이동호 한국철도시설공단 영남본부 레일팀장은 "매입전에 빗물 등이 스며들었고 기온이 떨어지면서 내부에 고여 있던 물이 얼어 부품의 부피가 팽창, 주변 콘크리트를 들어 올림으로써 침목에 금이 간 것 같다"고 말했다. 공단은 지난 4일까지 균열이 가지 않은 나머지 15만여 침목에 대해 균열발생 여부를 확인하는 전수조사를 했으며, 추가로 균열이 발생한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본지 취재결과 이번에 균열이 난 침목 내부의 매입전은 최초 침목 설계도면과 다르게 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시설공단에 따르면, 침목 설계도면엔 매입전 내부에 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는 압축 그리스·방수발포 충진재(充塡材) 등과 같은 방수물질이 들어가는 것으로 돼 있으나, 이번에 균열이 난 침목에 쓰인 매입전에는 반대로 물을 빨아들이는 충진재가 사용된 것이다. 현재 시설공단은 이처럼 설계와 다르게 생산된 침목 개수가 몇 개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공단은 나머지 15만여 침목 전부에 대해 방수 등의 기능을 가지는 압축 그리스를 집어넣는 후속 대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미 균열이 난 침목에 대해선 균열이 난 부위만을 보수하거나 뜯어내 고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이동호 팀장은 "설계도와 다르게 제작된 침목이 몇 개인지 현재 밝혀지지 않았다"며 "공사과정 전반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공사일정에는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공단은 독일 레일원 관계자도 이달 중 불러 후속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철저한 후속 대책 마련해야

철도분야 전문가들은 이번 균열사고가 고속철도 개통 이후에 또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공사단계에서부터 철저한 보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익명을 요구한 철도분야 관계자는 "침목은 시속 300㎞ 이상으로 달리는 고속열차의 속도와 무게를 감당하는 중요시설이므로 사업이 진행된 전 구간에 대해 안전 여부를 따지는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콘크리트 침목

고속철도 공사 구간에서 균열이 발생한 콘크리트 침목은 레일을 지탱하는 핵심 부품이다. 가로 길이 250.9㎝×세로 28.1㎝×높이 18.5㎝ 크기이다. 사진에서 보면 길이가 짧아 보이는데, 가운데 빈 곳까지 다 쳐서 가로 길이를 계산한다고 한다.

▶체결(締結)장치

레일과 침목을 연결하는 장치.

▶매입전

체결장치와 침목을 연결하는 부품. 나사못과 같은 역할을 한다.

▶충진재(充塡材)

매입전 아랫부분에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공간을 채우는 재료. 방수·발포 성분 또는 승인된 반고체 윤활유인 압축 그리스가 사용돼 빗물이 아예 스며들지 못하게 한다.